1. 2020년 3월 — 코스피 1,457로 떨어진 자리
2019년 12월 27일 2,204.21로 한 해를 닫았던 코스피는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2월 말부터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한국·이탈리아·미국으로 번지면서 글로벌 주식·원자재가 동시에 무너졌고, 외국인은 신흥국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 흐름 속에서 한국 주식도 급격히 매도하기 시작합니다. 한국거래소(KRX) 일별 통계 기준으로 외국인은 2020년 3월 한 달 동안만 코스피·코스닥 합산 약 12조 원 순매도를 기록했고, 그 매물 압력은 그대로 지수 하락으로 옮겨붙습니다.
가장 깊은 자리는 3월 19일이었습니다. 종가 1,457.64 — 직전 고점에서 33.87% 떨어진 자리이며,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가 본 가장 가파른 하락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시장에 있었던 다른 흐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코스피가 1,800선이 깨지던 3월 9일 이후로, 개인투자자가 거의 매 거래일 순매수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이 던지는 매물을 받아내는 주체가 통상 기관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 시기에는 그 자리를 개인이 채우기 시작합니다.
2. 외국인이 던진 자리, 개인이 받았다
2020년 3월 한 달 동안 코스피에서만 개인이 사들인 순매수 금액은 약 11조 1,869억 원이었습니다. 외국인이 같은 시장에서 십수조 원을 던지는 중에 그 매물의 절반 이상을 개인이 흡수한 셈입니다. 흐름은 한 달로 끝나지 않았고, 한국거래소 누적 통계 기준으로 2020년 8월 말까지 개인 누적 순매수는 약 38.94조 원에 도달합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24.40조 원, 기관은 13.80조 원을 순매도했는데, 이 두 매도 주체의 합 38.20조 원이 정확히 개인 매수 규모와 맞물리는 그림입니다.
매수의 중심에는 삼성전자가 있었습니다. 한 종목으로만 개인이 2020년 한 해 동안 사들인 순매수 규모가 약 9.32조 원이었고, 같은 기간 외국인은 같은 종목을 7.31조 원어치 순매도합니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판 종목과 개인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이 같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한 시기의 자본 흐름을 요약합니다.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시가총액 1위 종목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한 해 사이 의미 있게 줄어들고 그 자리를 국내 개인이 메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3. 이름의 정체성 — 왜 "동학"인가
"동학개미"라는 표현은 2020년 3월 어느 시점에 한 사용자가 온라인 영상에서 "개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동학농민운동에 빗댈 만한 일"이라고 말한 자리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명명했다고 못 박기는 어렵고, 같은 시기 커뮤니티·언론에서 비슷한 비유가 동시에 쓰이면서 한 달 안에 보편 어휘가 됐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반외세 프레임을 빌려, 외국인 매도에 맞서 한국 자산을 방어하는 국내 개인이라는 의미로 확장된 셈입니다. 같은 시기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한국 개인을 "서학개미"로 부른 표현이 함께 굳어진 것도 이 어휘의 관성이 만든 짝입니다.
이름이 굳어지자 시장의 행동 자체가 거기에 맞춰 따라갔습니다. 한국거래소 통계 기준으로 2020년 3월 19일부터 12월 30일까지 9개월 사이 개인 순매수 누적은 약 33조 원에 달했고, 한 해 전체 합산은 코스피·코스닥 통합 47조 원 안팎으로 정리됩니다. 이 매수의 자금원이 어디서 왔는지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자료는 한국금융투자협회의 고객예탁금 시계열입니다. 2019년 12월 말 28조 5,195억 원이었던 예탁금은 2020년 4월 1일 47조 6,669억 원으로 사상 최고를 찍었고, 8월에는 50조 원을 처음 넘어선 뒤 12월 26일 63조 2,349억 원까지 치솟습니다. 1년 사이 예탁금이 두 배가 된 건 한국 자본시장에서 본 적이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4. 사이클 관점 — 1997 과 2020 의 거울
1997년 외환위기를 한국 자본시장의 첫 분기점으로 본다면, 2020년 동학개미 운동은 그 시장의 두 번째 분기점이라 부를 만합니다. 두 사건은 외부 충격(아시아 도미노 vs 코로나19) → 외국인 자본 이탈 → 자산 가격 급락이라는 앞 단계까지는 같은 골격을 따랐지만, 매물을 받아내는 자리에서 갈립니다. 1997년에는 그 자리를 채울 국내 자본이 사실상 없었기에 IMF 구제금융이 필요했고, 2020년에는 같은 자리를 개인이 채워 정책 개입의 강도가 줄어든 채로 회복이 빨라집니다. 시장이 같은 충격을 어떻게 다르게 흡수하는지를 23년 간격으로 보여주는 한국 자본시장의 자료라고 봐도 됩니다.
이 시기는 시장의 인프라 자체도 바꿔놓았습니다. 한국예탁결제원·한국증권금융 통계 기준으로 2020년 3월 초 약 3,000만 개였던 활성 거래계좌는 그해 말 3,550만 개를 거쳐 2021년 3월 4,000만 개에 도달합니다. 인구 5,200만 명 안팎인 나라에서 활성 계좌가 4,000만 개에 이른 건 통계 첫 시점 이래 처음 있는 자리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증권업 수익 구조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미래에셋대우(현 미래에셋증권)의 2020년 영업이익이 1조 1,300억 원을 기록하면서 한국 증권업 사상 첫 영업이익 1조 원 클럽이 만들어진 사실도 같은 시기의 결과입니다. 이 글이 한국 금융사 카테고리에서 1997 외환위기 다음 자리에 놓인 이유 — 시장이 제도 위에서 한 번 다시 짜인 두 번째 분기점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매도세를 개별 기업 재무 흐름의 시각으로 옮겨 보고 싶다면 현금흐름 분석 기초 가, 같은 시기 글로벌 자산 변동을 큰 그림 속에 위치시키려면 분산 투자의 기초 정리 가 함께 두기 좋은 자료입니다.
5. 출처
- 한국거래소(KRX) · KOSPI 일별 종가 시계열 2019-12 ~ 2021-01
- 한국거래소 · 매매주체별 순매수 누적 통계 (2020년 1~12월)
- 한국금융투자협회 · 투자자예탁금 일별 시계열 2019-12 ~ 2020-12
- 한국예탁결제원 · 활성 거래계좌 분기 통계 2020-Q1 ~ 2021-Q1
- 위키백과 KOSPI 항목 (KRX 자료 기반 재정리)
- 미래에셋증권 사업보고서 2020 · 영업이익 1.13조 원 공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