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4년 — 천재들이 모은 펀드
LTCM은 1994년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가 세운 헤지펀드입니다. 그는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채권 차익거래로 이름을 떨친 전설적 트레이더였고, 자신이 살로몬에서 데리고 있던 정예 트레이더들을 그대로 데려왔어요.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두 명의 학자가 합류합니다 — 옵션 가격결정 공식(블랙·숄즈·머튼)으로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와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이었죠.
출발은 화려했습니다. 약 12억 5천만 달러의 초기 자본으로 시작해, 1995년과 1996년 수수료를 뗀 뒤에도 연 40%대 수익을 냈어요. 월가는 이 ‘드림팀’ 펀드에 돈을 맡기지 못해 안달이었고, 투자 조건도 LTCM이 일방적으로 정할 만큼 콧대가 높았습니다. 학계의 정밀함과 월가의 실전이 만난 완벽한 조합처럼 보였어요.
2. 수렴 거래와 레버리지 — 작은 차익을 거대하게
LTCM의 핵심 전략은 수렴 거래(convergence trade)였습니다. 성질이 비슷한 두 채권의 가격 차이(스프레드)가 비정상적으로 벌어졌을 때, 곧 정상으로 좁혀질 것이라 보고 한쪽은 사고 한쪽은 파는 방식이에요. 예컨대 갓 발행된 미 국채와 조금 오래된 국채는 거의 같은데도 미세한 가격 차가 생기는데, 그 차이가 좁혀지는 데 베팅하는 식입니다.
문제는 이 차이가 너무 작다는 거였어요. 한 건당 수익이 푼돈 수준이라, 의미 있는 수익을 내려면 어마어마한 규모로 키워야 했습니다. 그 답이 레버리지였어요. 1998년 초 LTCM의 자기자본은 약 47억 달러였는데, 빌린 돈을 합친 보유 자산은 약 1,250억 달러 — 자본의 약 26배였습니다. 여기에 장부 밖 파생상품의 명목 노출까지 더하면 약 1조 2,500억 달러, 자본의 250배가 넘었어요. 작은 차익이 레버리지를 거치며 거대한 수익으로 부풀던 구조입니다.
3. 1998년 8월 — 러시아가 뒤집은 베팅
모델의 전제는 ‘벌어진 스프레드는 결국 좁혀진다’였습니다. 평온한 시장에서는 거의 늘 맞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1998년 8월 17일, 러시아가 자국 국채에 대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고 루블화를 평가절하하면서 전제가 깨집니다. 놀란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던지고 가장 안전한 미 국채로 몰리는 ‘안전자산으로의 도피(flight to quality)’가 벌어졌고, 그 결과 스프레드는 좁혀지기는커녕 사상 유례없이 더 벌어졌어요.
LTCM의 거의 모든 포지션이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수십 개의 베팅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무너지는 — 모델이 ‘서로 상관없다’고 가정했던 위험들이 위기 앞에서 한꺼번에 상관되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레버리지 26배 위에서 작은 손실률은 곧 자본의 붕괴였습니다. 8월부터 9월 초까지 불과 한 달여 만에 펀드는 약 46억 달러를 잃고 자본이 거의 바닥났어요.
4. 월가의 구제금융 — 시스템 위기의 첫 경고
문제는 LTCM 하나로 끝나지 않을 위험이었습니다. 펀드가 파산해 1조 달러가 넘는 포지션을 한꺼번에 시장에 던지면, 거래 상대였던 월가 대형 은행들이 연쇄로 흔들릴 수 있었어요. 이른바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이었죠. 1998년 9월 23일,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윌리엄 맥도너가 월가 주요 14개 금융기관 대표를 불러 모읍니다.
결과는 약 36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이었어요. 핵심은 이 돈이 정부 세금이 아니라 은행들이 직접 모은 돈이었다는 점입니다. 연준은 멍석을 깔았을 뿐, 자금은 민간이 댔어요. 은행들은 LTCM 지분 대부분을 가져가는 대신 펀드를 질서 있게(서서히) 청산하기로 했고, 시장에 던지는 충격을 피했습니다. 한 헤지펀드를 살리려는 게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체의 연쇄 붕괴를 막으려는 조치였어요. 이 사건은 10년 뒤 2008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다시 마주칠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논쟁의 예고편이 됩니다.
5. 사이클 관점 — 모델 과신과 꼬리위험
LTCM이 남긴 교훈은 사이클을 볼 때 늘 되살아납니다. 첫째는 모델 리스크예요. 아무리 정교한 수학 모델도 결국 과거 데이터로 만든 지도이고, 한 번도 겪지 못한 사건(러시아 디폴트 같은 ‘꼬리위험’) 앞에서는 빗나갑니다. 모델은 위기 때 위험들이 서로 무관하다고 가정했지만, 실제 위기는 모든 것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갔어요. 둘째는 레버리지입니다. 26배 위에서는 약 4%의 손실이 자본을 통째로 지워 버립니다 — 평소엔 수익을 키우던 레버리지가 위기엔 파멸을 키운 셈이죠.
그래서 LTCM은 ‘똑똑함’이 ‘살아남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자주 인용됩니다. 손실을 견딜 여력을 남겨 두는 위험관리의 중요성은, 화려한 수익률 모델보다 훨씬 덜 매력적이지만 결국 시장에 남는 쪽을 가릅니다. 같은 레버리지·연쇄 매도의 골격은 블랙 먼데이 1987에서도 반복됐고, 거시 환경이 베팅의 전제를 통째로 바꾼 볼커 쇼크 1981처럼 큰 흐름을 함께 보면 사이클의 결이 또렷해집니다.
6. 출처
- President’s Working Group on Financial Markets (1999-04) · “Hedge Funds, Leverage, and the Lessons of Long-Term Capital Management” ·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 William J. McDonough (1998-10-01) · Testimony before the House Committee on Banking and Financial Services ·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 Roger Lowenstein (2000) · “When Genius Failed: The Rise and Fall of Long-Term Capital Management” · Random House
- The Nobel Prize · “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1997” (Robert C. Merton, Myron S. Scholes) · nobelprize.org
- Federal Reserve History · “Near Failure of Long-Term Capital Management, 1998” · federalreservehistor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