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 로 — 화폐를 다시 설계하려던 도박사
미시시피 버블을 이해하려면 먼저 존 로(John Law)라는 사람을 봐야 합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금세공업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도박과 결투로 젊은 날을 보내다 1694년 런던에서 결투 끝에 사람을 죽이고 유럽 대륙으로 달아났어요. 그런데 이 도박사에게는 한 가지 뚜렷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 한 나라의 부는 가진 금·은의 양이 아니라 거래를 돌리는 화폐의 양으로 커진다는 생각이었죠. 1705년 펴낸 『화폐와 무역(Money and Trade Considered)』에 그 이론이 담겨 있는데, 금이 부족해 경제가 묶여 있다면 국가가 지폐를 발행해 거래를 풀어 주면 된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그 이론을 실험할 최악의(그리고 그에게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어요. 1715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죽고 남긴 것은 끝없는 전쟁이 쌓아 올린 거대한 국가 부채였습니다. 섭정 오를레앙 공작은 갚을 길이 막막한 그 빚 앞에서 존 로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금이 모자라면 종이로 메우자는, 당시로서는 거의 연금술에 가까운 제안이었죠.
2. 지폐와 회사를 한 묶음으로 — 시스템의 설계
존 로의 설계는 두 개의 기둥으로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1716년 세운 은행(Banque Générale)으로, 1718년 말 국왕이 보증하는 국립은행 Banque Royale로 격상되며 지폐를 찍어 냈어요. 다른 하나는 1717년 세운 미시시피 회사(Compagnie d'Occident)로, 북미 루이지애나 — 미시시피강 유역 — 의 무역 독점권을 받은 회사였습니다. 1719년 로는 동인도회사·중국회사 등을 차례로 흡수해 이 회사를 사실상 프랑스의 모든 해외 무역과 세금 징수·조폐를 거머쥔 거대 복합체로 키웠고, 동시에 국가 부채까지 이 회사가 떠안아 주식으로 바꿔 주기로 합니다.
핵심은 두 기둥을 하나의 고리로 묶었다는 점이에요. 은행이 찍은 지폐로 사람들이 미시시피 주식을 사고, 주가가 오르면 신뢰가 커져 은행은 지폐를 더 찍고, 그 지폐가 다시 주식으로 몰리는 자기강화 구조였습니다. 같은 해 영국 해협 건너에서 벌어진 남해회사 버블이 정부 부채를 주식으로 바꾼 구조였다면, 미시시피는 거기에 국가가 직접 찍는 종이돈이라는 연료를 하나 더 부은 쌍둥이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두 거품은 1720년 같은 해에 함께 부풀었다 함께 꺼집니다.
3. 폭주 — 500리브르에서 1만 리브르까지
1719년 한 해 동안 미시시피 주식 값은 거의 수직으로 올랐습니다. 액면 500리브르에 발행된 주식이 그해 여름을 지나며 수천 리브르로 뛰었고, 1719년 말에서 1720년 초 사이 약 1만 리브르 부근까지 — 출발선 대비 스무 배 안팎 — 치솟았어요. 파리의 캥캉푸아 거리(Rue Quincampoix)에는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몰려 하인이 하룻밤 새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백만장자(millionnaire)'라는 단어가 이 무렵 프랑스어에 처음 자리 잡았다는 설이 따라붙을 만큼 광기가 짙었습니다. 1720년 1월 존 로는 프랑스 재무총감(Contrôleur général des finances)에 올라 한 나라의 재정과 화폐를 모두 손에 쥐게 됩니다.
4. 붕괴 — 평가절하 칙령과 종이의 추락
문제는 주가를 떠받치려 찍어 낸 지폐가 너무 많았다는 데 있었어요. 시중에 풀린 종이돈이 실물 경제가 감당할 양을 넘어서자 물가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고, 일부 큰손은 슬그머니 주식과 지폐를 금화로 바꿔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1720년 봄 존 로는 가격을 강제로 묶고 금화 인출을 제한하는 등 손을 썼지만, 결정적 실책은 5월 21일의 평가절하 칙령이었어요. 지폐와 주식의 공식 가치를 단계적으로 절반 수준까지 깎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국가가 보증한다던 종이의 약속 자체가 흔들리며 신뢰가 한순간에 꺼졌습니다. 칙령은 며칠 만에 철회됐지만 무너진 믿음은 돌아오지 않았죠.
그 뒤로는 앞서 본 자기강화 고리가 그대로 거꾸로 돌았습니다. 주가가 빠지자 사람들은 지폐를 금으로 바꾸려 은행으로 몰렸고, 은행에 그만한 금이 있을 리 없으니 지급은 막혔고, 지폐 가치가 무너지자 그 지폐로 값이 매겨지던 주식도 함께 종잇장이 됐어요. 1720년 말 주가는 출발선인 500리브르 부근으로 되돌아왔고 Banque Royale은 사실상 파산했습니다. 존 로는 그해 12월 변장한 채 프랑스를 빠져나가 1729년 베네치아에서 가난하게 죽습니다 — 한때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사람의 마지막치고는 쓸쓸한 결말이었어요.
후유증은 길었습니다. 프랑스는 이 사건으로 종이화폐와 은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깊은 트라우마를 갖게 됐고, 이후 한 세기 가까이 제대로 된 중앙은행을 세우지 못했어요. 해협 건너 영국이 비슷한 시기 남해회사 버블을 겪고도 잉글랜드은행을 중심으로 금융 시스템을 키워 간 것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종이돈이라는 발상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 오늘날 모든 나라가 그렇게 돈을 씁니다 — 그것을 떠받치는 신뢰와 통화 관리가 없으면 인플레이션과 붕괴로 직행한다는 교훈을 미시시피 버블은 가장 비싼 값으로 남겼습니다.
이 사건을 사이클의 눈으로 보면 거품의 골격이 또렷합니다 — 새 자산을 정당화하는 그럴듯한 이야기(신대륙 무역), 그것을 떠받치는 값싼 신용(국가 지폐), 가격이 오를수록 더 몰리는 군중, 그리고 신뢰가 끊기는 한순간의 방아쇠. 같은 1720년의 남해회사 버블이 쌍둥이처럼 같은 구조를 보였고, 두 세기 뒤 더 큰 규모로 반복된 모습은 대공황 1929에서, 디지털 시대로 옷을 갈아입은 형태는 닷컴 버블 2000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이런 거품 사이클이 내 자산 배분과 어떻게 부딪히는지를 학습 단계에서 같이 점검하고 싶다면 분산투자 기초가 곁에 두기 좋은 글입니다.
5. 출처
- John Law (1705) · "Money and Trade Considered, with a Proposal for Supplying the Nation with Money" — 존 로 본인의 화폐·신용 이론 1차 저술
- Antoin E. Murphy (1997) · "John Law: Economic Theorist and Policy-Maker" · Oxford University Press — 미시시피 시스템의 표준 학술 전기
- Earl J. Hamilton (1936) · "Prices and Wages at Paris under John Law's System" ·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 당대 가격·임금 1차 데이터
- Larry Neal (1990) · "The Rise of Financial Capitalism" · Cambridge University Press
- Banque de France 역사 아카이브 · "Le système de Law" 항목
- Britannica Money · "Mississippi Bubble" · "John Law"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