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을 팔지 않고 연금으로 바꾸는 구조
한국 가구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통계는 익숙합니다. 그런데 은퇴 후엔 매달 생활비가 필요하지, 아파트 평수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주택연금은 이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입니다. 집을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 담보로 맡기면, HF가 보증하는 금융기관(주로 시중은행)이 매달 연금 형태로 돈을 지급하고, 가입자는 그 집에 그대로 삽니다. 집을 팔지 않으면서도 그 집의 가치를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쓸 수 있는 구조예요.
영어로는 reverse mortgage, 말 그대로 「거꾸로 된 모기지」라고 부릅니다. 일반 주택담보대출은 돈을 한꺼번에 받고 매달 갚아 나가잖아요. 주택연금은 반대예요. 매달 돈을 받고, 정산은 마지막에 한 번 이루어집니다. 부모님이 두 분 모두 돌아가신 뒤에 집을 처분해 그동안 받은 돈과 이자를 갚는 구조라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원금 상환 부담이 전혀 없습니다. LTV(담보인정비율)를 따지는 일반 대출과 달리, 여기서는 「기대여명 동안 얼마를 쓸 수 있는가」를 역산하는 방식이에요.
2. 가입 조건 — 55세와 공시가격 12억의 문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은 부부 중 한 명이라도 만 55세 이상이면 됩니다. 원래 만 60세 이상이었는데 2020년 4월에 55세로 낮아졌어요. 주택 가격 기준은 공시가격 12억 원 이하입니다. 이것도 2023년 10월에 9억에서 12억으로 올라간 건데, 공시가격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공시가격은 시세보다 보통 60~80% 수준이니까, 시세 15~18억 원대 주택도 가입 가능한 경우가 꽤 있어요.
다주택자도 부부 합산 공시가격이 12억 이하면 가입할 수 있고, 주거용 오피스텔도 됩니다. 다만 가입 주택에 본인이나 배우자가 실거주(주민등록 전입)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는데, 2026년 6월부터는 질병 치료나 요양시설 입주 같은 불가피한 사유가 있으면 비실거주 가입도 허용됩니다. 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시는데 빈 집을 연금화하고 싶다면 이 완화 조항을 눈여겨볼 만해요.
3. 얼마나 받을 수 있나 — 나이와 집값이 가르는 월 수령액
월 수령액은 가입 나이와 주택 감정평가액으로 결정됩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집값이 높을수록 더 받아요. 기대여명이 짧으면 같은 집값을 더 짧은 기간에 나눠 주니까 당연한 구조입니다. 2026년 3월부터 계리 모형이 개편되면서 평균 3.13% 인상됐는데, 평균 가입자(72세, 4억 원 주택) 기준으로 월 133.8만 원 정도가 종신 정액형 수령액입니다.
수령 방식에도 선택지가 있습니다. 매달 같은 금액을 받는 정액형이 가장 흔하지만, 매년 3%씩 느는 증가형도 있고, 초기에 많이 받고 점점 줄어드는 감소형도 있어요.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남아 있다면 대출상환방식으로 그 빚을 먼저 갚고 남은 한도로 연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기초연금을 받는 저소득 고령자라면 우대형으로 14~20% 정도 더 받을 수 있는 경로도 있고요. 어떤 방식이든 부부 중 한 분이 살아 계시는 한 연금은 계속 나옵니다.
4. 비소구 — 집값이 떨어져도 상속인에게 청구 안 함
주택연금에서 가장 안심이 되는 장치는 「비소구(non-recourse)」 구조예요. 오래 살아서 받은 돈이 집값보다 많아져 버린 경우 — 예를 들어 20년간 연금을 받아 누적 수령액+이자가 5억인데 집을 팔아보니 3.5억밖에 안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1.5억 차이를 상속인에게 갚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족분은 HF가 떠안아요.
반대 상황도 있어요. 집값이 잘 유지되어서 처분가가 대출잔액보다 클 경우엔, 그 차이를 상속인에게 돌려줍니다. 상속인이 원하면 대출을 현금으로 상환하고 집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도 있고요. 이 구조 덕분에 부모님이 "내가 오래 살면 자녀에게 빚을 물려주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상속세를 설계할 때 주택연금 잔여분이 상속재산에 어떻게 잡히는지도 함께 따져 보면 좋아요.
5. 보증료와 세제 — 숨은 비용과 숨은 혜택
주택연금의 보증료 구조는 2026년 3월에 바뀌었습니다.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0%(종전 1.5%)로 내려갔고, 연보증료는 대출잔액의 0.95%(종전 0.75%)로 올라갔어요. 초기 부담을 줄이고 장기 이용자 비용을 소폭 올린 겁니다. 4억 원 주택 기준으로 초기보증료가 6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200만 원 절감인데, 이 돈을 별도로 내는 건 아니고 연금 지급 총액에서 자동 차감됩니다.
세제 쪽도 꽤 실속이 있어요. 공시가격 5억 이하 주택은 재산세가 25% 감면되고, 연금소득의 이자비용 상당액은 연간 최대 20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습니다. 근저당 설정 시 등록면허세와 국민주택채권 매입도 면제예요. 국민연금 수령액이 빠듯한 가구에서는 이 세제 혜택이 실질 수령액을 꽤 끌어올려 줍니다. 월 134만 원이 단순 현금흐름이 아니라, 세금 줄인 뒤의 실질 현금흐름으로 느껴지는 게 주택연금의 숨은 이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