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은 세금 혜택, 다른 운용 구조
연금저축 기초 편에서 세액공제와 수령 구조를 다뤘다면, 이 글은 「어떤 형태로 시작할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연금저축은 세 종류가 있어요. 증권사에서 가입하는 연금저축펀드, 보험사에서 가입하는 연금저축보험, 그리고 은행에서 가입하던 연금저축신탁(2018년 이후 신규 가입 중단)입니다. 셋 모두 세액공제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연 600만 원 한도(IRP 합산 900만), 총급여 5,500만 원 이하면 16.5%, 초과면 13.2% 환급 — 이 부분은 차이가 없어요.
차이는 돈을 굴리는 방식에 있습니다. 연금저축펀드는 가입자가 직접 ETF나 펀드를 골라서 운용하고, 원금 보장이 안 됩니다. 시장이 떨어지면 적립금도 같이 줄어요. 연금저축보험은 보험사가 공시이율(2025년 말 기준 평균 약 2.3%)로 굴려 주고, 최저보증이율(10년 이내 1.0%, 초과 0.5%)이 있어서 원금이 명목상 보장됩니다. 패시브와 액티브 운용의 차이처럼, 스스로 결정하느냐 맡기느냐의 문제인 셈이에요.
2. 수익률 — 7.6% vs 2.6%, 세 배의 간극
금융감독원이 매년 발표하는 연금저축 운용현황에 따르면, 2024년 수익률은 연금저축펀드 7.6%, 연금저축보험 2.6%였습니다. 펀드가 보험의 약 세 배예요. 이 차이는 일시적인 게 아니라 2021년(펀드 13.5% vs 보험 1.6%), 2023년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물론 펀드는 하락 리스크가 있습니다. 2022년처럼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떨어진 해에는 펀드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연금저축은 최소 20~30년을 바라보는 장기 상품이에요. 그 시간 동안 매년 5%p 차이가 복리로 쌓이면 최종 적립금은 2배 가까이 벌어집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비용 구조입니다.
3. 사업비라는 보이지 않는 벽
연금저축보험의 구조적 약점은 사업비에 있습니다. 매달 10만 원을 넣으면 그 중 5,000~8,500원이 사업비(설계사 수당·보험사 관리비)로 먼저 빠지고, 나머지만 적립돼요. 공시이율 2.3%로 불려도 원금을 되찾으려면 7~8년이 걸립니다. 5년 만에 해지하면 납입한 돈보다 적게 받는 경우가 흔해요. 이 사업비 구조가 금융위원회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을 만큼 소비자에게 불리합니다.
반면 연금저축펀드의 비용은 ETF 총보수(TER) 기준 0.1~0.3% 수준이고, 적립금에서 매일 일할로 차감됩니다. 10만 원을 넣으면 10만 원이 그대로 투자되고, 거기서 연간 300원 정도가 빠지는 거예요. 같은 10만 원이 30년간 복리로 굴러가는데, 시작부터 8%가 빠진 9만 2천 원과 10만 원은 도착점에서 꽤 다른 금액이 됩니다. DC형 퇴직연금에서 원리금보장형 vs 실적배당형의 차이를 다뤘는데, 연금저축에서도 본질은 같습니다.
4. 보험에서 펀드로 갈아탈 수 있다
이미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갈아탈 수 있습니다. 연금계좌 이체제도를 쓰면 보험에서 펀드로 옮기면서 세액공제 이력과 과세이연 혜택이 그대로 유지돼요.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는 게 아니라 「이전」이라서 기타소득세 16.5%가 붙지 않습니다.
절차는 간단합니다. 이전할 증권사에서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고,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이전 신청을 하면 2~4주 안에 완료돼요. 기존 보험사를 직접 방문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요. 이전되는 금액은 납입한 원금이 아니라 해약환급금 기준입니다. 가입한 지 7년 이내라면 사업비가 이미 빠진 상태라 원금보다 적은 돈이 넘어올 수 있어요. 그래도 남은 기간이 10년 이상이라면, 지금 이전해서 펀드 수익률로 복리를 쌓는 쪽이 보험에 남아 2.3%를 받는 것보다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5. 178조 원이 보여 주는 흐름
2024년 말 연금저축 전체 적립금 178.6조 원 중 보험이 115.5조(64.7%), 펀드가 40.4조(22.6%), 신탁이 14.7조(8.2%)를 차지합니다. 숫자만 보면 보험이 압도적이지만, 흐름은 달라지고 있어요. 2024년 한 해 동안 연금저축펀드 적립금이 11.1조 원 늘어난 반면, 보험과 신탁은 합쳐서 3천억 원 줄었습니다. 보험 비중이 처음으로 60%대로 내려왔고, 이 추세는 해마다 빨라지고 있어요.
가입자 764만 명 중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세금 혜택이면 수익률이 높은 쪽"을 고르고 있다는 뜻이에요. 결국 연금저축펀드와 보험의 선택은 「시장 변동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변동이 싫다면 보험의 공시이율이 마음 편하고, 20~30년 시간 지평을 두고 복리를 키우겠다면 펀드가 구조적으로 유리합니다. 어느 쪽이든, 연금저축 기초 편에서 다룬 것처럼 가입 5년 +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받아야 세제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