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계 한 줄에서 시작된 위기
2009년 10월, 총선으로 막 들어선 그리스 신정부가 이상한 발표를 합니다. 직전 정부가 6%대라고 보고해 온 그해 재정적자가 사실은 GDP의 12.7%라는 것이었어요. 숫자를 잘못 계산했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다르게 집계돼 있었다는 고백이었죠. 유럽연합 통계기구 유로스타트가 나중에 확정한 최종 수치는 15.4%였습니다(Eurostat, 2010년 11월). 유럽 부채 위기는 이 한 줄에서 시작됐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이 줄줄이 그리스 등급을 내렸고 국채 금리가 뛰기 시작했어요. 국채 금리가 오른다는 건 그 나라 정부가 돈을 빌리는 비용이 오른다는 뜻이고, 이미 빚이 많은 나라에 그건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채권 가격과 금리가 왜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지가 아직 낯설다면 채권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짚고 오는 편이 이 글을 읽기 훨씬 수월합니다.
2. 통화는 하나, 재정은 열일곱
그리스 하나의 재정 부실이 왜 유럽 전체를 흔들었을까요. 유로존의 설계 때문입니다. 유로를 쓰는 나라들은 통화와 정책금리를 하나로 묶었지만, 예산과 세금과 국채 발행은 각자 그대로 남겨뒀어요. 위기가 정점이던 2011~2012년 기준으로 보면 통화는 하나인데 재정은 열일곱 개였던 셈입니다.
이 조합이 위험한 이유는 충격이 왔을 때 쓸 수 있는 완충 장치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자기 통화를 가진 나라는 경쟁력이 떨어지면 환율이 내려가면서 수출이 살아나고 그만큼 시간을 법니다. 환율이 자동 조절 밸브 노릇을 하는 거죠. 그런데 유로를 쓰는 그리스에는 그 밸브가 없었습니다. 대신 임금과 고용과 국채 금리가 조정을 떠맡게 되고, 그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어요. 환율이 한 나라 경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환율 기초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그러니 PIIGS —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 라는 묶음 이름이 시장에서 돌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나라의 재정 사정은 제각각이었지만 "환율로 도망칠 수 없다"는 조건만은 똑같았거든요.
3. 구제금융의 연쇄
2010년 5월 2일, 유로존과 IMF가 그리스에 1,10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5월 9~10일 주말, 유럽은 훨씬 큰 판을 깔았어요. EFSF 4,400억 유로에 집행위 자금 600억 유로, IMF 최대 2,500억 유로를 더해 7,500억 유로짜리 안전판을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냅니다.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유럽이 스스로 인정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번지는 걸 막지는 못했습니다. 2010년 11월 아일랜드가 850억 유로를, 2011년 5월 포르투갈이 780억 유로를 받았어요. 특히 아일랜드는 성격이 좀 달랐습니다. 정부가 방만해서가 아니라 무너지는 은행들을 국가가 떠안다가 은행 부실이 국가 부채로 옮겨 붙은 경우였거든요. 2008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형태를 바꿔 반복된 셈인데, 그 원형은 2008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다뤘습니다.
4. 국채도 깎인다는 사실
2012년 3월, 그때까지 대체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선진국 국채에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집니다. 민간이 들고 있던 그리스 국채 약 1,970억 유로에 대해 원금의 53.5%를 깎는 재조정이 실행됐고, 보유자의 약 97%가 참여했어요. 이 한 번으로 그리스 채무는 약 1,070억 유로가 사라졌습니다(ESM 자료 기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채무 재조정이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사건이 남긴 건 꽤 뚜렷합니다. "선진국 국채는 원금이 보장된다"는 전제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등급이 높다는 말은 위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위험이 낮다는 확률적 진술일 뿐이라는 걸, 유럽이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5. 말 한마디가 끝낸 위기
2012년 7월 26일 런던에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짧게 말합니다. 유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9월에 ECB는 조건을 받아들인 나라의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겠다는 OMT 프로그램을 내놓았어요.
흥미로운 건 그다음입니다. OMT는 결국 단 한 번도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남유럽 국채 금리는 그 뒤로 빠르게 내려앉았어요. 중앙은행이 "무제한"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말을 실행하지 않고도 시장을 돌려세울 힘이 된다는 걸 보여준 장면입니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자산 가격을 어디까지 움직이는지에 관해서라면, 반대 방향으로 신뢰를 쌓아 인플레이션을 꺾었던 볼커 쇼크 1981이 좋은 짝이 됩니다.
6. 남은 것
위기가 진정된 뒤에도 청구서는 오래 남았습니다. 그리스 실업률은 2013년 27%를 넘겼고(Eurostat), 경제 규모는 2009년부터 누적으로 4분의 1가량 줄었습니다. 유로존은 이후 은행동맹과 ESM 같은 상설 장치를 만들며 설계의 구멍을 부분적으로 메웠지만, 통화는 통합했는데 재정은 각자라는 근본 구조 자체는 지금도 그대로예요.
그래서 이 사건은 과거형으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한 나라가 통화 주권을 내려놓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위기가 왔을 때 그 선택의 청구서가 누구에게 가는지 — 유럽이 3년에 걸쳐 답한 질문은 그것이었고, 통화 체제가 흔들릴 때마다 되풀이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통화 주권을 쥐고 있었음에도 환율 방어와 자본 유출을 함께 겪어야 했던 한국의 경험은 IMF 외환위기 1997에서 이어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