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사 · Crisis 10 · 완결

쌍방울 부도 1997 — 야구단과 리조트로 번진 욕심, 속옷 명가의 몰락

쌍방울 부도는 1997년 10월 전북을 대표하던 속옷 명가 쌍방울그룹이 만기가 돌아온 8,700억 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사건으로, 대기업이 아닌 견실한 중견기업조차 본업 밖 과시성 사업에 빚을 쏟으면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 준 외환위기 도미노의 한 페이지입니다. 메리야스로 연매출 1조 원을 눈앞에 뒀던 회사가 프로야구단·스키리조트·국제대회라는 본업과 무관한 꿈에 자금을 밀어 넣다 IMF 한파에 가장 먼저 얼어붙었어요. 한국 금융사 시리즈를 닫는 마지막 조각입니다.

해석 · 8분 읽기 · 한국 금융사 카테고리 10 · 완결

1. 속옷 명가가 야구단과 리조트로 무너지다

쌍방울 부도는 1997년 10월 전북을 대표하던 속옷 명가 쌍방울그룹이 만기가 돌아온 8,700억 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사건으로, 한보·대우 같은 대기업이 아니라 탄탄하던 중견기업조차 본업 밖 과시성 사업에 빚을 쏟으면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 준 외환위기 도미노의 한 페이지입니다. 메리야스로 시작해 연매출 1조 원을 눈앞에 뒀던 회사가, 프로야구단과 스키리조트와 국제대회라는 본업과 무관한 꿈에 자금을 밀어 넣다 IMF 한파에 가장 먼저 얼어붙었어요. 한국 금융사 시리즈의 마지막 조각이자, 외형 확장의 욕심이 어떻게 멀쩡한 기업을 삼키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2. 메리야스에서 시작된 꿈

쌍방울은 전북 전주에 뿌리를 둔 향토기업이었습니다. 속옷·내의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며 견실하게 성장했고, 1980~90년대에는 국내 대표 메리야스 브랜드로 자리 잡았어요. 여기까지였다면 쌍방울은 외환위기를 충분히 견뎠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본업의 성공이 더 큰 꿈으로 번지면서 시작됐습니다.

1989년 프로야구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를 창단했고, 1990년 12월에는 남부권 최대 종합리조트인 무주리조트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타는 1997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였어요. 1993년부터 이 국제대회 개최 준비에 경기장과 부대시설을 짓느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속옷을 팔아 번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고, 부족분은 모두 빚으로 메웠습니다. 본업은 멀쩡한데 본업 바깥에서 새는 돈이 부채비율을 조용히 끌어올리며 회사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던 거예요.

본업 밖으로 번진 자금 — 쌍방울의 확장 본업 속옷·메리야스 레이더스 야구단(1989) 무주리조트(1990) 동계U대회(1993~) 빚 8,700억 1997.10 부도 초록=본업, 앰버=비주력 확장, 빨강=대회 투자와 그 끝. 돈은 본업에서 벌어 본업 밖으로 샜다.
견실한 본업(속옷)에서 번 현금이 야구단·리조트·국제대회라는 비주력 사업으로 흘러나갔고, 부족분은 빚으로 채워졌다.

3. IMF 한파, 가장 먼저 언 곳

1997년 가을 외환위기가 닥치자 은행들은 일제히 대출을 조였습니다. 빚으로 비주력 사업을 떠받치던 기업은 유동성이 가장 먼저 말랐어요. 쌍방울도 그랬습니다. 만기가 돌아온 8,700억 원을 막을 길이 없자 1997년 10월, 결국 부도를 맞았습니다. 같은 해 1월 한보로 시작된 부도 도미노가 기아를 지나 연말로 향하던 그 한복판이었어요.

본업인 속옷 사업 자체는 경쟁력이 있었다는 점이 이 사건을 더 뼈아프게 합니다. 회사를 무너뜨린 것은 메리야스가 안 팔려서가 아니라, 메리야스로 번 돈을 야구장과 스키장에 묻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1998년 쌍방울그룹은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사실상 공중분해됐고, 이후 브랜드는 애드에셋·대한전선 등으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4. 시리즈를 닫으며 — 위기가 가른 것

한국 금융사 시리즈를 여기서 닫습니다.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단층에서 시작해 대우의 차입경영, 한보의 정경유착, 부산저축은행의 예금자 보호 문제, 레고랜드·ABCP의 신뢰 붕괴까지 — 시대도 규모도 다른 위기들을 짚어 왔어요. 쌍방울은 그 마지막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보편적인 교훈을 남깁니다. 위기는 대기업만 고르지 않았고, 정경유착이 있어야만 터지지도 않았습니다.

쌍방울이 일러 주는 것은 '확장의 방향'입니다. 같은 빚이라도 본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쓰였는지, 야구단과 리조트 같은 본업 밖 욕심을 채우는 데 쓰였는지는 호황기엔 잘 드러나지 않다가 돈줄이 마르는 순간 운명을 가릅니다. 기업을 볼 때 매출의 크기만큼이나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 본업을 단단히 하는 투자인지, 외형을 키우는 과시인지 — 를 따져 봐야 하는 이유예요. 견실한 속옷 회사를 삼킨 것이 시장의 불운이 아니라 스스로 벌인 확장이었다는 사실, 그것이 한국 금융사 열 편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한 문장입니다 — 위기는 대개 밖이 아니라 안에서 자란다.

Series — 한국 금융사 · 제10화 / 전 10화 완결

← 이전 화 · 한보 부도 1997 — IMF의 전조, 5조 빚과 정경유착이 당긴 방아쇠

‘한국 금융사’ 시리즈 전체 보기

이어서 읽기
한국 금융사 · 1화 IMF 외환위기 1997 — 한국 자본시장의 분기점 한국 금융사 · 9화 한보 부도 1997 — IMF의 전조 기본적 분석 · 재무 부채비율 — 빚으로 키운 몸집을 가려내는 잣대
← 이전: 한보 부도 1997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