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여세가 노후 설계에 끼어드는 이유
상속세 편에서 사후 재산 이전을 다뤘다면, 이 글은 생전 이전 — 증여를 다룹니다. 노후를 준비하면서 자녀에게 종잣돈을 마련해 주고 싶은 부모, 반대로 부모님 재산을 미리 정리하고 싶은 자녀 — 양쪽 모두 증여세와 마주치게 됩니다. 특히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자녀 명의로 옮길 때, 증여재산공제 안에 들어오느냐 못 들어오느냐가 세금 수백만 원의 차이를 만들어요.
2022년 기준 연간 증여세 신고 건수는 21.6만 건, 증여재산가액은 37.7조 원이었습니다. 부동산이 전체의 51%를 차지하고, 20세 미만 수증인도 1.8만 건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가구가 이미 증여를 활용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공제 구조와 세율을 정확히 모르고 진행하다가 예상 밖의 세금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거예요.
2. 10년마다 초기화되는 공제 — 자녀 5천만, 배우자 6억
증여재산공제는 관계마다 한도가 정해져 있고, 같은 사람에게서 받은 증여는 10년 단위로 합산합니다. 배우자끼리는 10년간 6억 원까지 비과세이고, 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주는 건 5천만 원, 미성년 자녀에게는 2천만 원이에요. 기타 친족(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 2025년부터 범위 축소)은 1천만 원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10년 주기 초기화」입니다. 50세에 자녀에게 5천만 원을 증여하고, 60세에 다시 5천만 원을 증여하면 두 번 모두 비과세예요. 20년에 걸쳐 1억 원을 세금 없이 넘길 수 있는 셈입니다. 자녀가 둘이면 2억, 배우자에게도 별도로 6억씩 가능하니까, 부부가 자녀 2명에게 30년간 분할 증여하면 상당한 금액을 비과세로 이전할 수 있어요. 다만 이 전략은 시간이라는 자원이 필요해서, 일찍 시작할수록 유리합니다.
3. 세율과 세대생략 할증 — 손자녀에게 직접 주면 30% 추가
증여세 세율은 상속세와 동일한 누진 구조입니다. 과세표준 1억 이하 10%, 5억 이하 20%, 10억 이하 30%, 30억 이하 40%, 30억 초과 50%예요. 종합소득세처럼 구간별로 올라가는 구조라서, 공제를 뺀 뒤의 금액이 클수록 실효세율이 높아집니다.
여기에 세대생략 할증이라는 추가 장치가 있어요. 자녀를 건너뛰고 손자녀에게 직접 증여하면, 산출세액에 30%가 더 붙습니다. 미성년 손자녀에게 20억 원을 초과하는 증여를 하면 40%까지 올라가고요. 부모 세대의 세금을 한 번 건너뛰는 효과를 막기 위한 장치인데, 이 때문에 공제 범위(5천만 원) 안에서만 손자녀에게 증여하고, 초과분은 자녀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인 전략입니다.
4. 사전 증여가 항상 유리하지 않은 이유
오랫동안 "상속보다 증여가 낫다"는 게 재산 이전의 정설처럼 여겨졌습니다. 미리 증여하면 재산이 불어나기 전의 낮은 가액으로 세금을 매기니까요. 하지만 2025년 상속세 개편이 이 계산을 꽤 바꿔 놓았습니다. 상속세 자녀공제가 1인당 5천만 원에서 5억 원으로 열 배 올라갔거든요.
예를 들어 자녀 2명이 있는 가구의 총 상속재산이 15억 원이라면, 상속 시에는 일괄공제 5억 + 배우자공제 5억 + 자녀공제 10억(5억 × 2) = 20억 공제가 가능해 상속세가 0원입니다. 반면 같은 재산을 미리 증여하면 자녀 1인당 5천만 원(합계 1억)만 비과세이고 나머지 14억에 누진세율이 붙어요. 물론 재산이 20억, 30억을 넘어가면 상속 공제만으로는 모자라서 사전 증여가 여전히 의미 있지만, 「무조건 미리 준다」는 공식은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게 됐습니다.
5. 증여추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
증여세에서 빠뜨리기 쉬운 게 증여추정 규정입니다. 자녀가 직업이나 소득에 비해 과도한 재산을 취득했을 때, 국세청이 자금 출처를 조사해서 소명하지 못하면 증여로 간주하는 거예요. "현금으로 줬으니 안 걸릴 거야"라는 생각이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금전 거래는 특히 엄격하게 봐서,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간 재산 양도는 별도 증여추정 규정이 적용됩니다.
자녀에게 돈을 빌려주는 경우도 주의가 필요해요. 무이자로 빌려주면 「적정이자율(현행 4.6%)로 계산한 연간 이자 상당액」이 1천만 원 이상일 때 증여세가 붙습니다. 역산하면 약 2억 1,700만 원까지는 무이자 대여가 비과세인 셈인데, 이 금액을 넘으면 차용증을 쓰고 이자를 실제로 주고받는 게 안전합니다. 증여세 신고 기한은 증여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3개월이라 상속세의 6개월보다 짧으니, 기한도 놓치지 않도록 챙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