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에서 벌어진 일 — 61%에서 51%로
미국 중산층에 속하는 성인 비중은 1971년 61%에서 2023년 51%로 내려왔습니다. 퓨리서치센터가 중위소득의 3분의 2에서 두 배 사이에 있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잡아 센 수치인데, 이 나라는 통계가 길게 쌓여 있어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기 좋아요. 2023년 기준 3인 가구라면 대략 6만 1,000달러에서 18만 3,000달러 사이가 그 구간에 들어갑니다 (Pew Research Center, The State of the American Middle Class, 2024).
빠져나간 10%p가 어디로 갔는지가 흥미롭습니다. 아래로만 흘러내린 게 아니라 위아래로 갈라졌어요. 하위 소득층은 27%에서 30%로 3%p 늘었고, 상위 소득층은 11%에서 19%로 8%p 늘었습니다. 가운데가 얇아지면서 양 끝이 두꺼워진 셈인데, 특히 위쪽이 더 크게 불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2. 머릿수보다 몫이 먼저 줄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정작 더 인상적인 건 사람 수가 아니라 돈의 몫이에요. 같은 자료에서 미국 중산층 가구가 나라 전체 가구소득 가운데 가져가는 몫은 1970년 62%에서 2022년 43%로 줄었습니다. 인구 비중이 10%p 빠지는 동안 소득 몫은 19%p가 빠진 겁니다. 중산층은 수가 줄어든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몫을 잃었어요.
차이는 소득이 오른 속도에서 생겼습니다. 1970년부터 2022년 사이 계층별 중위소득은 모두 올랐어요. 하위층이 55%, 중산층이 60% 늘었는데 상위층은 78%가 늘었어요 (Pew Research Center, 2024). 중산층 소득도 분명 늘긴 늘었는데, 위쪽이 더 빨리 달아나면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깎인 거예요.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앞서가는 쪽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 체감과 통계가 어긋나는 첫 번째 지점이 여기 있습니다.
3.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OECD가 회원국을 통틀어 살펴본 결과도 방향이 같습니다. 중위소득의 75~200% 구간을 중산층으로 볼 때 그 비중은 1980년대 중반 64%에서 2010년대 중반 61%로 내려왔고, 이들의 소득 몫도 69%에서 64%로 줄었어요 (OECD, Under Pressure: The Squeezed Middle Class, 2019). 인구 비중보다 소득 몫이 더 크게 빠지는 미국의 패턴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세대를 갈라 보면 변화가 더 또렷해집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20대 시절 70%가 중산층에 속했는데, 밀레니얼 세대는 같은 나이대에 60%였어요 (OECD, 2019). 열 명 중 한 명이 출발선에서부터 다른 자리에 서게 된 셈입니다.
소득만큼이나 크게 작용한 건 나가는 돈이었습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가구 지출에서 가장 큰 항목은 주거비이고,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대 약 4분의 1에서 최근 약 3분의 1로 올랐어요. 지난 20년 동안 집값이 가구 중위소득보다 세 배 빠르게 올랐다는 수치도 함께 나옵니다. 벌이가 조금 늘어도 집값과 전세·월세 부담이 그보다 빨리 오르면 손에 남는 게 줄어드는데, 통계상 소득 계층은 그대로여도 살림살이의 체감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소득으로 보면 그 간극이 더 분명해지고요.
4. 그런데 한국 통계는 반대로 말한다
한국은 이 흐름에서 비껴 서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위소득 50~150% 기준 중산층 비중은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2011년 54.9%에서 2021년 61.1%로 늘었어요 (KDI FOCUS, 「우리나라 중산층의 현주소와 정책과제」, 2023). 미국과 OECD 평균이 줄어드는 동안 한국 통계는 반대 방향을 가리킨 겁니다.
다만 같은 분석에서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50% 언저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처분가능소득과 시장소득의 차이는 세금과 정부 이전소득인데, 늘어난 부분의 상당 몫이 그 조정에서 나왔다는 뜻이에요. 벌이 자체가 두꺼워졌다기보다 제도가 뒤에서 받쳐 준 결과에 가깝습니다.
체감이 통계를 따라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갈립니다. 중산층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소득인데, 사람들이 자기 위치를 가늠할 때 실제로 들여다보는 건 소득보다 자산 쪽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자산의 격차는 소득의 격차보다 훨씬 가파릅니다. 앞서 나라별 불평등에서 봤듯 자산 지니계수는 어느 나라에서나 소득 지니계수보다 높게 나오고, 세계 부의 피라미드에서 확인한 쏠림도 소득이 아니라 자산 기준이었습니다.
5. 두꺼운 허리가 얇아진다는 것
자산을 기준으로 세계를 다시 세워 보면 중간의 자리는 더 좁아 보입니다. UBS 집계에서 자산 1만~10만 달러 구간에 속한 성인은 전 세계의 42.1%인데, 이들이 가진 부는 전체의 12.2%입니다 (UBS, Global Wealth Report 2026, 2025년 말 기준). 같은 자료에서 자산 100만 달러가 넘는 1.5%가 세계 부의 48.4%를 갖고 있어요. 사람으로는 가장 두꺼운 층이 부에서는 가장 얇은 층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중산층이 사라진다’는 문장은 조금 고쳐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서 있던 자리의 몫이 얇아지는 거예요. 미국에서 인구 10%p가 빠지는 동안 몫은 19%p가 빠졌고, OECD 평균에서도 몫이 더 크게 줄었으며, 한국처럼 통계상 비중이 늘어난 곳에서도 늘어난 근거의 상당 부분은 제도의 뒷받침이었습니다.
중산층이라는 말이 원래 가리키던 건 소득 구간이라기보다 어떤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벌어서 쓰고 남겨 모을 수 있고, 그 모은 것으로 다음 세대의 출발선을 조금 앞당겨 놓을 수 있는 상태요. 지금 통계가 보여 주는 건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허리가 얇아진다는 표현이 유독 오래 쓰이는 것도, 숫자가 줄어서라기보다 버티는 일이 전보다 힘들어졌다는 감각을 그 말이 잘 담아내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