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매판매 시리즈

미국 소매판매 시리즈 · 머니스쿱 발표·이벤트

미국 소매판매는 사람들이 지난달 가게와 식당에서 쓴 돈을 인구조사국이 모두 더해 매월 중순에 공개하는 숫자입니다. 미국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몫이 워낙 커서, 이 한 줄에 그달 성장률 전망이 통째로 뒤집히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숫자가 금액이라는 점입니다. 몇 개를 팔았는지가 아니라 얼마어치를 팔았는지를 세고, 물가를 걷어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작년과 똑같은 양의 물건을 샀는데 가격만 3% 올랐다면 소매판매는 3% 증가로 찍힙니다. 소비가 늘었다는 발표를 보고 살림이 나아졌다고 읽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죠. 이 지표가 좋게 나온 달에는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나란히 확인해야 실제로 더 많이 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명목과 실질을 가르는 감각 하나만 인플레이션 편에서 챙겨오면 이 표가 달리 보입니다.

발표 자료를 열면 총액 말고도 여러 갈래로 나뉜 숫자가 함께 나옵니다. 그중 시장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컨트롤 그룹이라고 부르는 항목입니다. 전체에서 자동차와 주유소, 건축자재, 그리고 음식점을 뺀 값인데, 이름은 낯설지만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미국의 국민계정을 만드는 기관이 개인 소비를 추정할 때 바로 이 값의 증감률을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그러니까 컨트롤 그룹은 성장률로 곧장 이어지는 통로인 셈이고, 시장이 총액보다 이쪽을 먼저 확인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빠지는 항목들을 보면 왜 굳이 따로 세는지가 이해됩니다. 자동차는 한 대 값이 크고 특정 달에 판매가 몰리는 성질이 있어서 몇 대 차이로 전체 숫자를 흔들어놓습니다. 주유소 매출은 사람들이 기름을 더 넣어서가 아니라 유가가 올라서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건축자재와 음식점도 각각 다른 통계로 넘어가 처리됩니다. 변덕이 심하거나 성격이 다른 항목을 걷어내야 소비의 바탕 흐름이 드러난다는 발상입니다.

중순에 나오는 이 발표가 속보라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표본 조사를 바탕으로 먼저 추정치를 내고, 이후 응답이 더 들어오면 값을 고칩니다. 그래서 지난달 숫자가 이번 달 발표에서 조용히 바뀌어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한 달 전에 "소비가 꺾였다"고 읽었던 그 달이 수정 뒤에는 멀쩡한 달이 되어 있기도 하죠. 발표 당일 헤드라인만 보고 판단을 굳히기보다, 직전 달 수정치가 어느 방향이었는지를 함께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계절 조정도 이 지표에서는 유난히 중요합니다. 연말 대목이나 개학 시즌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소비 패턴이 워낙 뚜렷해서, 조정을 거치지 않은 원자료는 12월에 폭등하고 1월에 급락합니다. 발표되는 값은 이 반복분을 걷어낸 것이라 "12월보다 줄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죠. 다만 명절 날짜가 해마다 달라지거나 큰 눈이 소비를 미뤄놓는 달에는 조정이 어긋나면서 숫자가 실제보다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소비의 성격을 읽으려면 항목별로 나눠 보는 편이 낫습니다. 자동차나 가구처럼 오래 쓰는 물건에 지갑이 열렸다면 앞으로의 형편에 자신이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식료품 지출만 늘고 나머지가 줄었다면 소비가 필수품 쪽으로 몰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고요. 총액이 같아도 안을 열어보면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오는 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앞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미시간대 조사에서 따로 확인할 수 있는데, 말과 지출이 어긋나는 구간이 의외로 깁니다.

발표 직후 시장 반응은 대체로 빠릅니다. 소비가 강하면 경기가 버티고 있다는 뜻이라 연준이 금리를 서둘러 낮출 이유가 줄어들고, 약하면 반대쪽 기대가 붙습니다. 다만 소비가 강한 것이 저축을 헐어 쓰거나 빚을 늘려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면 지속되기 어렵다는 해석도 함께 나옵니다. 이때는 같은 달 개인소득과 소비 보고서를 열어 소득이 함께 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소비가 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GDP 기초를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미국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사느냐는 한국에도 곧장 닿습니다. 그들이 지갑을 닫으면 아시아 공장의 주문이 줄고, 그 결과가 수출 실적으로 나타나기까지 몇 달이 걸리지 않습니다. 미국 소비가 꺾이는 신호를 먼저 잡아두면 한국 수출 둔화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죠. 기업 쪽 주문 흐름을 보는 ISM PMI와 가계 쪽 지출을 보는 이 지표를 함께 두면 수요의 앞뒤가 맞춰집니다.

소비가 무너진 국면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2008년이 보여줍니다. 집값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스스로 부자라고 느끼던 감각이 사라졌고, 그 심리가 지출로 옮겨붙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2020년에는 외출이 막히면서 서비스 지출이 사라진 대신 물건 구매가 폭증하는 기묘한 구간이 나타났고, 이때 소매판매만 보고 경기를 판단했다면 현실과 한참 어긋난 결론에 닿았을 겁니다.

그래서 헤드라인이 크게 나온 달에 시장이 오히려 조용한 경우가 있습니다. 총액을 밀어 올린 것이 판매량이 아니라 가격이었고 컨트롤 그룹은 제자리였다는 걸, 발표 30분 안에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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